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와 결만 있다. 대사 속도, 장면 전환이 빨리 보기 2배속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빠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막장드라마에 빠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자극한다.
인간은 누구나 갑이 되어서 대접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똑똑하고 성실했던 검사, 교수, 기업인들이 국회의원만 되면 욕망의 노예로 변해가는 것은 인성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통사람이기 때문이다. 자리와 환경이 주어지면 인간은 누구나 갑질을 한다. 단지 인격과 성숙함이 그 욕망을 다스리고 절제할 뿐이다. 무의식에 꼭꼭 억제해 왔던 원초적인 욕망이 드라마를 통해서 구현되는 쾌감은 실로 강렬하다. ‘욕하면서도 본다’는 말처럼, 우리의 엄격한 초자아는 이 드라마를 부정하고 비난하게끔 만들지만 본능은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공격성의 환기, 대리만족
막장드라마는 인간 내면의 은밀한 파괴 욕구, 공격성을 환기시키고 대리만족의 쾌감을 준다. 충분히 말로 할 수 있는 얘기를 부수고 집어던지고, 때리고 소리 지른다. 천서진과 주석경은 평범한 톤의 대사가 거의 없다.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낸 응어리와 분노의 샤우팅을 듣고 있자면 실제로 저렇게 예의 없고 제멋대로인 사람이 있을까?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속시원한 느낌이 든다. 보통 우리는 항상 남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조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타르시스에 우리는 열광하는 것이다. 살면서 실제로 물건을 부수고 누구를 때릴 일이 몇 번이나 되겠는가, 평생 그럴 일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듯한 감정의 분출과 아드레날린에 미러링 하며 간접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관계에 대한 이해
펜트하우스의 성공은 단순히 원초적이고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다. 이전의 막장드라마들과 수준이 다른 열렬한 지지와 관심을 받는 이유는 인간 내면과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새어 나오는 열등감, 자존감과 정체성, 라이벌 의식등을 조명하면서 형제는 물론 부부사이, 심지어 부모 자식간에도 적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윤희와 천서진의 관계를 보면서 어린 시절 나를 무시했던 친구가 생각났고, 주단태가 자녀를 학대할 때, 내가 부모에게 당했었던 정서적 학대, 원망과 두려움, 분노가 떠올랐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라 심연, 깊은 무의식에 감춰왔던 내 은밀한 욕망과 감정들이 떠올라 부유하고, 이것을 마주하는 느낌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