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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기간
2024/01/19 → 2024/02/05
분류
문학
한 줄 요약
이런 점에서 공상에 빠진 자는 언제나 모순적인 상황에 빠진다. 현실 세계를 부정하지만, 동시에 이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 하한다.
저자 및 출판사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평가
⭐️⭐️⭐️

01.19 금 ( 0% ~ 13% )

나중에는 이 의식의 쓰라림이 일종의 저주스런 오욕에 찬 감미로운 느낌으로 변하여 마침내는 영락 없는 쾌락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렇다, 쾌락이다, 진짜 쾌락인 것이다!
작중의 ‘나’는 눈 앞에 보이는 벽을 알고 있음에도 달려가 부딪히는 활동가를 우둔한 사람이라고 본다. 오히려 불가능을 인지하고, 이를 타협하는 자신이 더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다르게, 자신을 굴욕적인 사람이라고 의식하고 있다.
굴욕에서 느껴재는 쾌락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포장하기 위한 자위에 가깝다. 다만, 이는 자신을 위한 발버둥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40살에 돌아본 자신의 인생이 한없이 부끄럽고 허무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01.23 화 ( 13% ~ 16% )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든 이성이나 이익이 명령하는 것에 따르기보다는 하고 싶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은 이성적일까? 이성적 판단은 실체하는 이익과 손실에 기반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이성이 아닌, 무언의 끌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해, “이성적으로 옳은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곤 한다. 끌림은 이성의 영역에서 정의 내릴 수 없기에, 판단의 이유와 기저를 명쾌하게 말하지 못하고 “그냥 이걸 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이성과 비이성이란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이성의 잣대만을 활용해 인간을 정의 내릴 수도 없다. 그저 인간은 존재할 뿐이다.

01.25 목 ( 16% ~ 21% )

인간은 자기가 한낱 핀이 아니라 어엿한 인간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할 뿐 아니라, 인간의 일이란 실제에 있어 그것 한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수학 공식처럼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살아 숨쉬는 인간이 아니게 된다. 그저 특정한 로직에 의해 동작이 통제되는 로봇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비이성은 인간다움의 특징이다.

01.26 금 ( 21% ~ 34% )

인간은 자기 자신에 관해선 반드시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므로 정확한 자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을 얼마나 솔직하게 평가하는가? 내가 지닌 욕망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있는걸까? 혹은, 치부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어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타인의 시선에 비추는 부끄럽고 못난 사람이 보이지 않도록, 자신이 이상적이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진실에 회피하도록, 그래보이는 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이 물음 조차도 애써 태연한 척을 하는 게 아닐까? 진실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지만, 뒤따라오는 무게는 너무도 무겁다.

01.29 월 ( 34% ~ 41%)

음탕의 시간이 끝나면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 … 익숙해졌다기보다 자진해서 참아내기로 했던 것이다.
작중의 ‘나’는 끝없는 자기 혐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공상을 선택했다. 공상 속에서 나’는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고 영리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공상 속에 존재한 ‘나’가 더 멋지게 보일수록, 현실 속의 ‘나’에 대한 혐오감은 짙어간다. 이렇게 돌아온 혐오감을 다시 피하기 위해 공상에 더 강하게 빠져 들려고 한다. 지하 생활자의 삶은 악순환의 굴레이며, 한 번 시작한 순간부터 스스로를 더 지하 깊은 곳으로 내몰아 버린다.

01.30 화 ( 41% ~ 59% )

그러나, 나는 물론 남아 있었다.
공상에 중독된 사람은 현실의 그 무엇도 선택할 수도, 행할 수 없다. 선택에 의해 발생할 부정적 미래를 먼저 생각하고, 공포와 불안에 사로 잡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때로는 상상이 우리를 무너지게 만든다.

01.31 수 ( 59% ~ 74% )

나 자신의 말에 감동하면서 점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나는 지하의 세계에서 터득한 비밀스런 사상을 한시바삐 피력하고 싶어졌다. 무언가 홀연히 나의 내부에서 타오르면서 어떤 목적을 나한테 제시한 것이다.
공상 속에 빠진 자는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현실 세계에서 인정 받고 싶어 한다. 공상에 빠진 자는 자신의 생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인지하고 싶지만, 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서도 인정 받고 싶어 한다. 그래야지만, 자신의 생각이 단순히 자기 위안이 아니라, 틀린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02.01 목 ( 74% ~ 89% )

딴 일을 다 제쳐놓고서라도 한시바비 즈베르코프와 시모노프에게 나라는 인간의 가치평가를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인간은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 받음으로써 존재성 부여 받는다. 이때, 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선 이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바꿔 말하면, 능력이 없는 자는 가치를 입증하기 어려우며, 존재성 또한 부정당한다. 작중의 ‘나’는 이러한 유형의 사람이기에 모든 삶이 태동하는 지상이 아닌, 지하에서 숨어 지내는 <지하 생활자>로 표현된다.
능력이 부족한 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비난을 던지며 자신의 가치를 급급하게 채우는 삶을 살아간다. 이 방식은 자급자족으로 존재성을 채워 나가는 것이며, 지하 생활자라도 살아가고 싶음을, 자신은 존재하도 있음을 외치는 행위에 가깝다:

02.02 금 ( 89% ~ 95%)

나는 '안정'을 원했다. 지하의 세계에 혼자 남아 있기를 원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서 이제는 아주 생소해진 이 '현실 생활'이 숨막힐 듯 나를 압박했던 것이다.
공상 속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맞음과 틀림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다. 현실의 ‘나’가 어떠하든지간에 공상에서 만큼은 이상적 모습으로 살 수 있다.
현실과 공상의 차이가 클수록, 공상이 ’나‘에게 가져다 주는 안정과 행복은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이 달콤함에 의해 공상에 중독되고, 결국 공상이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몸이 된다. 우리는 달콤한 공상이 아닌, 씁쓸한 현실을 살아야 함을 잊으면 안 된다. 설령 그것이 슬프고 힘들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진짜 삶이다.

02.05 월 ( 95% ~ 100%)

값싼 행복과 고결한 고민 중에 과연 어느 쪽이 좋을까?
작중 내내 그는 자신의 공상에 대한 찬양과 의심을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현실을 회피하고, 다시 공상에 빠져드는 것을 선택했다. 동시에 자신의 공상을 의미 있는 행동으로 포장하기 위해 “고결”이란 단어로 막을 내린다. 이런 점에서 공상에 빠진 자는 언제나 모순적인 상황에 빠진다. 현실 세계를 부정하지만, 동시에 이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 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