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7 화 ( 0 ~ 52 )
나는 불행한 여성들의 불행한 이야기를 채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주인공, 민주는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은 거의 없고, 분노란 감정만을 지니고 있다. 다만, 논리적이고 이성적 성격 덕분에 자신이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한 연기를 하며, 사회에 녹아들고 있다.
그녀가 여성 상담소에서 일하는 이유는 불행한 여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동료 상담소 직원들의 이야기에 기계적으로 웃는 것과 다르게, 전화를 건 여성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분노한다.
사실 그녀는 불행한 이야기에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에,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모습을 엿보는 게 아닐까? 설령 분노에 기반한 공감일지라도, 이러한 감정으로 타인과 연결되고 싶음을 내심 바래는 게 아닐까? 책의 제목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다. 여기서 금지된 것은 타인과의 유대감은 아닐까 짐작해본더.
08.28 수 ( 52 ~ 125 )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거의 매일 밤 어머니의 배개가 필요했다. 그것은 세상과 나를 막아주면서 동시에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었다. 어머니의 배개로 나는 슬픔을 이겼고 그것으로 나는 세상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유명 배우인 백승하의 납치를 준비하면서, 주인공 민주는 어머니의 배개로 마음을 다스린다. 공감과 감정을 배제하고, 타인을 혐오하며, 모든 행동과 생각을 이성적 계산에 기반하는 그녀일지라도, 내면의 감정을 완벽히 없애진 못했다. 갑작스럽게 발화한 감정의 정체가 외로움인지, 두려움인지 혹은 다른 것인지 그녀는 정의 내리지 못한다. 이성적 판단에 의하면, 이러한 약자의 감정은 그녀에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라는 캐릭터는 입체적이다. 완벽한 이성만을 가진 듯한 사람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감정을 지님을 보여준다. 자신을 절대적 강자라고 자부한 그녀도 인간이며,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불완전성은 인간의 이야기를 더 재밌게 만든다
08.29 목 ( 125 ~ 154 )
숨겨진 백승하의 모든 것이 샅샅이 드러나고, 그의 매력적인 웃음 뒤에 숨겨진 추악한 본성이 밝혀지면 그것으로 나의 목적 하나 는 달성된다.
민주는 유명 배우, 백승하와 어떠한 연고도 없다. 즉, 그녀는 원한 관계 없이 그를 납치했다. 대신에 그녀의 납치는 자신만의 숭고한 의미가 담겨있다.
그녀는 남성을 혐오한다. 동시에 남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여성도 혐오한다. 언론에선 승하를 가정적이고, 부드러우며, 따스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즉, 완전무결한 남성이며, 많은 여성이 백승하를 찬양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백승하를 납치했다. 모두가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한 남자가 경찰의 추적 과정에서 숨겨진 사고와 비밀을 대중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즉, 그녀의 납치는 많은 여성을 계몽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만약 백승하가 완전무결한 존재이며, 민주가 생각한 악한 본성이 없다면, 그녀는 어떠한 결말에 도달할꺼?
08.30 금 ( 154 ~ 206 )
내가 한가하고 즐겁게 막간의 평화를 누리고 있을 때 백승하는 절망의 바닥을 더듬고 있었 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왜 절망의 바닥으로 추락했는지를.
민주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볼 때마다 황홀감을 느낀다. 이러한 성향은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옳음을 검증하는 데 집착하게 만든다. 즉, 자신이 생각한 바가 옳다는 것을 보여쥬기 위해 무엇인가를 시작한다.
오히려 백승하를 납치한 것도 검증의 일환이다. 자신은 남들보다 뛰어나며, 특히 어린 시절의 자신을 학대하고 집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성‘이란 종족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검증하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남성 중에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백승하를 납치하고, 그를 굴복시켜 검증하려고 한다.
처음에 그녀의 납치는 여성을 위한 사회적 의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쯤되니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인 듯 하다.
09.03 화 ( 206 ~ 238 )
단 한 명으로도 이 세상이 결코 남자에게만 유리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있지요. 많이도 필요 없어요. 단 한 명이면 충분해요.
세상을 위한 신념이 있고, 초월적인 존재만이 이를 이룩할 수 있으며, 그 존재는 ‘나’ 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진 자의 이야기. 집착적인 신념은 자신에겐 축복이자 타인에겐 공포다.
09.04 수 ( 238 ~ 284 )
우리는, 아, 나는 지금 너무 자주 우리는,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강민주는 남성에게 몸과 마음이 사로 잡힌 여성의 삶을 혐오하며, 이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에 백승하를 납치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그에게 점차 매료된다. 자신이 혐오하고 부정한 사람의 삶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다. 그녀는 승하에게 빠져들고 있음을 느끼지만, 모든 것은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추락은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탑에 나타난 작은 균열이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다가, 이들이 모여 생긴 거대한 균열에 의해 무너진다. 자신을 절대적 존재로 칭하는 그녀, 그녀의 추락이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09.05 목 ( 284 ~ 323 )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남자들의 눈물은, 남자들의 절망은, 아니, 남자들의 젖은 날개조차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모든 젖어있는 것들은, 그것이 여자의 얼굴이건 남자의 얼굴이 건 관계없이 나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서서히 깨닫는다. 모든 젖어있는 것에 나는 태연할 수 없다. 젖은 얼굴의 비애 앞 에서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한다.
그녀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 됐다. 자신이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 백승하의 눈물에 슬퍼하고, 자신보다 밑에 있다고 여긴 남기의 절규에 아련함을 느낀다. 자신이 완벽한 이성을 지녔다고 생각한 그녀도 감정에 의해 행동과 판단이 흐려진다.
동시에 그녀의 신념도 딜레마에 빠진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여성은 약자이며, 남성은 폭군이었다. 여성이 더 이상 약자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승하와 남기를 보며, 남성도 약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폭군이나 권력자로 생각한 존재가 동시에 약자로 존재할 수 있다는 명제는 그녀의 신념에 돌을 던진다.
09.06. 금 ( 323 ~ 367 )
그래서 저는 선생님을 죽였습니다 … 선생님은 지금 자신도 원하지 않는 잘못 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원하지 않는 길로 접어들면 끝장입니다.
남기는 오랫동안 믿고 따른 민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그녀를 살해한다. 살해의 동기는 변화한 그녀에게 실망해서가 아니다. 절대적 존재 같은 그녀가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당신이 그토록 싫어한 약자의 여성이 됐음을 깨달으며 슬퍼할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란 책의 제목처럼, 자신에게 금지된 것이 되길 소망하는 그녀가 겪게 될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살해한 것이다.
이 책은 열린 결말을 지닌다. 그녀는 백승하를 만나며 변화하기 시작했고, 남기에 의해 변화된 모습에 도달하지 못한 체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으로 인해 금지된 것을 얻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게 됐기에 축복일 수도 있다. 반대로, 변화하지 못했기에 비극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