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3 화 ( ~ 62 )
나는 도저히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기에 남들이 천덕꾸러기로 취급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요처럼 애지중지해주는 걸 의아하게 생각했다. 기요는 가끔 부엌에서 아무도 없을 때 "도련님은 올곧고 고운 성품을 지녔어요" 하며 나를 칭찬해주곤 했다.
관계를 맺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작중의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탓에 많은 사고를 쳤고, 가족에게 질타를 받는다. 스스로도 답이 없다고 생각하며, 남들로부터의 비난을 당연하듯이 받아들인다.
‘나’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하는 듯 보이지만, 작중의 행동을 보며 그의 속마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숙집 노인의 이야기에 싫증을 느끼면서도 함께 하고, 발령난 학생들의 장난에도 화를 내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자신을 따뜻하게 대한 기유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고마움을 느낀다. 그저 관계를 맺는 법이 서투른 순수한 사람이 아닐까?
08.21 수 ( ~ 103 )
세상은 온통 사기꾼들뿐으로 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싫어졌다. 세상이 이런 곳이라면 나도 지지 않고 남들처럼 속이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세상은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을 멍청한 사람으로 본다. 암묵적으로 거짓과 아첨은 당연한 것이며, 이에 속아 넘어간 사람은 아둔하다고 여긴다. 순수함을 잃어 가는 이유는 그렇지 않은 삶이 오히려 힘들기 때문이다.
작중의 ‘나‘는 감정에 솔직하고 거짓이 없다. 옳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이를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하는 법이 서투르기에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동료 교사의 술수에 휘말릴 뿐이다.
오직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기요 뿐이다. 그녀가 쓰는 도련님이란 호칭엔 순수한 ‘나’에서 느껴진 아름다움과, 이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받을 안쓰러움이 묻어 있다.
08.22 목 ( ~ 129 )
사람은 좋고 싫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법이 다. 논리로 움직이는 게 아닌 것이다.
작중의 ’나‘는 이성과 논리가 아닌,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것을 따르며, 설령 반대되는 논거가 있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믿는다. 이런 ’나‘를 보며, 무언의 거부감이 느껴진다. 감정에 솔직한 모습이 멍청하게 느낀걸까? 아니면, 내가 갖지 못한 모습이기에 부러운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