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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기간
2023/08/12 → 2023/09/17
분류
문학
한 줄 요약
조언과 충고라는 이름이란 탈로 자신의 욕망과 바램을 투영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자 및 출판사
해르민 헤세
평가
⭐️⭐️
브런치 서평
08.14 (p.0 ~ p.28)
인간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바램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한다.
이때, 자신의 힘으로 상대방으로 휘두를 수 있다고 판단하면, 단순한 투영을 넘어 지배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로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새우지만, 자신의 바램을 실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자신이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투영 대상이 대신 달성했다는 대리 만족을 느끼고자 한다.
08.16 수 ( p.28 ~ p.48 )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평범한 사람이 되는 일은 마치 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이란 바램은 자신이 아닌, 주변 사람의 기대에 의해서 생긴 게 아닐까?
어린 시절의 한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즐겼다. 하지만, 주변 어른의 기대를 받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일상의 행복을 멀리하고, 우수한 성적을 받아 뛰어난 학교를 가는 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나도 자신의 성공보다, 부모님에게 행복을 드리는 걸 목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노력했었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나”가 온전히 원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끝없이 사유해야 한다.
08.17 목 ( p.48 ~ p.76 )
인간은 자유와 질서를 저울대의 양 팔에 올려놓고, 오랜 세월 동안 이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왔다. 지나친 자유는 질서를 해치지만, 지나친 질서를 자유를 억압한다. 둘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른바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오랜 역사 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과연 절대적이고 올바른 균형점이란 게 존재할까? 양 팔에 올려진 자유와 질서의 크기는 사회가 아닌, 개인에 의해 결정된다. 누군가는 자유로운 행동이라 말하는 것도, 또 다른 누군가는 질서를 헤치는 행동이라 말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자유와 질서는 개인의 입맛에 의해 결정되는 소비 개념으로 전락됐다는 느낌이 근다. “자유를 위해서!“ 혹은 ”질서를 위해서!“라는 말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기 위한 좋은 명분이 된다.
08.18 금 ( p.76 ~ p.96 )
지적 능력은 높지만, 실상에서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헛똑똑이”, “일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칭호를 갖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지식은 있지만, 지혜가 없다는 점이다.
지식과 지혜의 불균형은 필연적인데, 이 둘을 가질 수 있는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학문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그렇지 못하다. 그 대신에 지혜는 경험과 사유를 통해 쌓아진다. 지식과 지혜를 모두 갖기 위해선, 서로 다른 방법론의 조화가 필요하다.
다만, 작중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지식만을 지나치게 강요한다. 어른들에게 중요한 건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에 대한 것 뿐이다. 진정한 교육자의 상은 무엇일까? 적어도 지식과 지혜를 모두 주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08.28 월 ( p.96 ~ p.147 )
사회가 정해진 길을 따르려는 한스와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하일너, 이 둘은 상반대 되는 인물이다. 반대라는 특징은 자아를 찾아가는 사람에게 무언의 이끌림을 선사한다.
자아를 찾는 여정은 담금질의 과정이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의문을 품고, 답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이때, 상반대 되는 인물은 자신이 그 동안 지녀 온 신념과 가치관을 강하게 두드린다. 이 두드림은 의식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파문이 가라 앉힐 즈음에 의식의 확장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면서, 또 다시 자신을 두드리길 바랜다.
09.04 ( p.147 ~ p.167 )
우리위 삶은 마치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수레를 밀어올리는 것과 같다. 수레 안에는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이 담긴다. 이 중에선 나의 자유 의지로부터 생긴 것과 타인의 바램으로부터 생긴 것도 있다.
꾸준히 수레를 밀기 위해선, 수레의 무게가 자신이 감당 가능한 정도여야 한다. 무게가 과해지면, 처음엔 괜찮아 보이지만 점점 힘이 다해 도저히 수레를 밀 수 없게 된다. 수레를 미는 걸 멈추는 순간, 수레는 언덕길을 따라 떨어지고 뒤에 있는 우리는 수레바퀴에 깔리게 된다.
수레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선 타인의 바램을 덜어내고, 나만의 가치와 신념만을 수레에 담아야 한다. 나의 수레는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덜어낼 사 있을까?
09.11 (p. 167 ~ p.190)
어른들은 아이가 자신들이 바라는 삶을 따르길 원하며, 이 삶을 따르는 것만이 절대적 행복을 쫓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약하기 때문일까? 어린 아이는 자신보다 강력해 보이는 어린들의 말을 절대적 사실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삶을 거짓된 사실에 맞추려고 한다.
슬픈 점은 거짓된 사실로부터 피해를 받는 자는 이를 강요한 자가 아닌, 강요 받은 자다. 뒤늦게 무엇인가 잘못 됌을 깨달았을 때, 이미 아이의 삶은 어딘가 뒤틀리고 무너진 상태다. 이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나만의 삶을 살 수 있을까?
09.11 (p. 190 ~ p.217)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된다. 과거를 회상하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당시 사건의 강렬한 즐거움, 선택에 대한 후회 등등. 이러한 감정은 모두 현재와 과거의 비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와 과거, 둘의 차이가 선명할수록 과거를 향한 추억과 향수는 강력해진다.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는 건, 그만큼 현실이 힘들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09.13 ( p.217 ~ p.264)
한스는 삶의 의미를 주변 어른들의 바램으로 찾았다. 이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할수록, 그는 삶의 생기를 찾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한스가 이들이 바라는 삶을 살수록, 이들이 한스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계속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한스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들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함을 깨닫고, 그의 정신은 무너지게 된다. 한스가 죽은 체로 발견된 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한스의 죽음을 보며, “우리 모두는 저 아이에게 소홀했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작중 내내 한스에게 조언과 충고를 던진 어른들에게 던지는 말이 아닐까? 조언과 충고라는 이름이란 탈로 자신의 욕망과 바램을 투영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09.14 ( p.264 ~ p.278 )
줄기를 잘라낸 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다시 싹을 틔운다. 싹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지만, 결코 나무가 되지 못한다. 버티지 못한 자와 버티지 못하게 만든 자, 모두 존재하지만 언제나 상처를 받는 건 전자의 사람이다.
부조리하게도, 세상은 버티지 못한 자를 이상한 사람, 연약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다. 버티지 못하게 만든 자는 조언과 위로라는 말로, 책임을 쉽게 회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