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5 목 ( 0 ~ 14% )
온라인 기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나 사이의 물리적 및 시간적 거리를 없앴다. 이제 우린 언제 어디서나 클릭 몇 번 만으로 필요한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편의성을 증대하면서 동시에 중독 가능성도 증가시켰다.
중독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소는 접근성이다. 대상에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에 따리, 그 대상에 중독될 확률도 급격히 증가한다. 현시대의 우리는 중독에 가장 취약한 시대에 살고 있다.
04.26 금 ( 14 ~ 20% )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유튜브, 인스타 등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의 삶이 힘들고 지치기 때문은 아닐까? 회사, 학교, 가정 등 다양한 곳에서 문제를 직면한다. 이 중에서 일부는 오로지 내 힘만으로 풀어야 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막막한 문제는 발생한 순간부터 끝없이 머리 속에서 맴돌며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때, 유튜브, 인스타 등은 재미있는 콘텐츠를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내고, 여기에 파묻혀 불안과 걱정을 잊게 만든다. 요즘 매일 웹툰과 유튜브를 새벽까지 보다가 잠이 든다. 나도 마찬가지로 불안과 걱정을 피하고자 다른 곳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불안이 긍정적인 자극제가 된다고 말하는 모습과 다르게, 나도 불안에 회피하고자 하고 있다.
04.30 화 ( 20 ~ 27% )
쾌락과 고통은 뇌의 같은 부위에서 비롯되며, 뇌는 이 둘을 저울의 양측에 올리고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쾌락이 클수록, 후속 고통은 커진다. 그리고 커진 고통만큼의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이때부터 쾌락의 최소선은 처음에 인지한 쾌락이 크기가 아닌, 현재 뇌가 인지한 후속 고통의 크기다. 즉, 쾌락과 고통은 역치를 공유하며, 끝없이 더 높은 것을 추구하게 만든다.
마약 중독자들이 더 강하고 자극적인 약을 찾는 이유는 이전에 먹은 약으로는 현재 쌓인 고통의 양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쾌락과 고통, 둘의 멈추지 않는 치킨 게임이다.
05.02 목 ( 27 ~ 34% )
중독의 치료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중독 대상은 우리의 불안과 걱정을 일시적으로 없애줄 뿐,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것을 따를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일시적인 치료가 불안감의 크기를 점점 더 키운다면, 더더욱 이를 따를 이유가 없다.
05.03 금 ( 34 ~ 45% )
효과적인 자기 구속을 실천하기 위한 열쇠는, 먼저 우리가 강력한 강박의 마법 아래서 경험하 는 자발성의 결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갖고 있을 때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우리는 중독을 일으키는 대상과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만큼 유혹의 손길이 실시간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환경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동물이며, 우리가 처한 환경은 중독게 최적화 되고 있다. 그렇기에 치료의 시작은 물리적 자기 구속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중독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생기고, 이때부터 의지가 발현될 수 있다.
05.07 화 ( 45 ~ 63% )
그녀는 바닥에 가까운 감정도 인간다움을 느끼게 하기에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도파민이 격감한 쥐들이 힘들게 몇 발 짝 가서 음식을 구하는 대신 굶어 죽듯이.
뇌는 쾌락과 고통 사이에 항상성을 지닌다. 고통을 느낀 만큼 쾌락을 느끼고 반대로, 쾌락을 느낀 만큼 고통을 느낀다. 즉, 쾌락과 고통은 서로의 존재를 위한 조건이다. 만약 우리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쾌락 또한 느낄 수 없게 된다.
쾌락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기에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나친 고통은 오히려 쾌락이 뒤따라오기도 전에 우리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 결국 쾌락과 고통의 줄다리기를 버틸 수 있는 힘이 선행되야 한다.
05.08 수 ( 63 ~ 75% )
실제 생활이 기대한 이미지와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그릇된 이미지만큼이나 거짓된 소외감과 비현실감을 느끼게 된다.
SNS 속 나는 업로드한 사진과 영상, 글에 의해 형성된다. 가령 갓생을 살고 싶은 나로 살아가고 싶다면, 갓생처럼 비춰지는 사진들만 업로드하면 된다. 설령 일주일의 대다수를 무의미하게 보내도, 단 몇 장의 사진만을 건져내서 업로드한다면, SNS 세상에서 나는 갓생러로 존재할 수 있다. 현실의 ‘나’와 완전히 다른 ‘나’가 존재하는 셈이다.
다만 우리의 뇌는 모두를 동일한 ‘나’로 인지한다. 이 둘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기에 모순에 빠져 비현실감을 느끼게 된다. 진정한 나를 아는 것,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05.09 목 ( 75 ~ 76% )
수치심과 죄책감은 다른 감정이다. 죄책감은 자신의 긍정적 자아와 대비되는 모습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자신의 긍정적 자아의 인지를 전제로 한다. 반면 수치심은 이러한 자아가 없이 느껴지는 감정이다. 즉, 처음부터 자신의 자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태다.
05.13 월 ( 76 ~ 83% )
우리가 결점을 갖고 있 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그들과 나누는 깊은 유대감에서 이러한 따뜻한 감정이 커진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친밀감을 만드는 방법은 완벽함이 아니다.
이전에 읽은 책에서 수치심이 발생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 남이 나를 보는 모습 사이에 괴리감에 엤다고 한다. 이 작동 알고리즘을 볼 때, 중독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중독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중독자라는 모습을 그 누구에게 보이고 싶을까?
수치심 앞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중독 대상을 향한 의존도가 달라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계속 고립시키게 된다. 결국 혼자가 된 자신은 중독 대상에 더 매달리게 된다.
05.14 화 ( 83 ~ 100% )
여러분도 주어진 삶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 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 피하려고 하는 대상으 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방향 을 바꾸어 그것을 마주하길 바란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새롭게 몰입할 무엇인가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