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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기간
2025/11/03 → 2025/11/28
분류
문학
한 줄 요약
내게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닌, 오직 ‘나’ 스스로 고민하며 도달한 철학이 필요하다
저자 및 출판사
장자크 루소 / 문학동네
평가
⭐️⭐️⭐️⭐️

11.01 일 ( p.1 ~ p.52 )

내게는 나를 위한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졌을 때, 온전히 “나”라는 존재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이 관계로 인해 “나”가 믿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끝없이 의문과 질문을 받게 되며, 불과 방금 전까지 믿은 것을 의심하게 된다.
저자인 루소는 이신론을 설파한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배척 받았고, 그제서야 “나”라는 존재 본연을 직면할 수 있게 됐다. “나”의 온전한 철학과 믿음은 오직 세상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배척 받아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깨달음은 축복인가 불행인가?

11.02 월 ( p.52 ~ p. 66 )

진실을 말할 의무가 오로지 진실의 유용성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면, 나 자신이 어떻게 그 유용성을 판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중략) 내가 가진 지식을 오직 공정함이라는 기준에 따라 나눠줄 수 있을 만큼 사물의 모든 관계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스스로 자신할 수 있는가?
자신을 둘러싼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평가는 순전히 “나”의 앎에 기반한다. 그러나 앎이 잘못거나 부족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충분히 안다고 착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사실은 전체의 일부분이며, 우리의 인식과 판단 능력은 그저 짧은 경험과 지식에 기반한다. 결국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게 알지 못하지만, 때때로 아니 자주 이 사실을 잊는다. 이러한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외부에서 강한 충격을 받고 끄집어 내지만, 다시 희미해진다. 우리는 얼마나 오만한가? 우리가 오만한 이유는 자신에 대한 망각 때문은 아닐까?

11.04 화 ( p.66 ~ p.90)

내 마음이 아쉬워하는 ‘행복’이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는 조금도 강렬하지 않지만 지속되면서 점점 매력이 커져 마침내 그 속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게 되는, 그런 단순하고도 영원한 상태다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지만, 이 “행복”이 뭐냐고 묻는다면 명쾌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저자인 루소는 ‘행복’의 정의를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상태”라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즐겁거나 재밌는 순간에 “이 시간이 계속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는 듯하다. 그저 짧은 순간의 즐거움을 몸소 느낄 뿐이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에서는 “이 시간이 계속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행복의 근원적 성질은 영원성의 추구가 아닐까?

11.05 수 ( p.90 ~ p.106)

그러나 진심을 다했던 이런 첫 선행으로부터 내가 예측하지 못했고 더는 그 멍에에서 벗어날 수도 없게 된 일련의 약속의 사슬이 생겨났다. 내가 베푼 첫 도움이 받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뒤로 이어질 도움의 담보에 불과했던 것이다.
도움을 한 번도 주지 않은 사람의 거절보다, 도움을 준 적이 있는 사람의 거절에 더 슬퍼하고 분노한다. 마치 누군가의 선행을 “이후의 선행”에 대한 계약으로 여기며, 이 계약을 지키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 얼마나 비이성적인가?

11.07 금 ( p.106 ~ p.126 )

바라보는 자의 영혼이 예민할수록, 그 조화가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황홀감에 더 깊이 빠져든다.
10대 시절,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이 들어 의식이 끊기기 전까지 몽상을 많이 했다. 내가 만화 속 주인공이 되어 엄청난 능력을 갖고, 눈 부시는 위업을 가지는 모습을 자주 상상하며 밤을 보냈다. 하지만 20대가 되고,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몽상을 전혀 갖지 않게 됐다. 이제 내 의식은 몽상이 아닌, 현실에 닻을 내렸다. 내 영혼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그저 어른이 된 것일까?

11.10 월 ( p.126 ~ p.142 )

온갖 곳에 매달려보려 계속 애를 썼는데도 그 버팀대들이 차례로 모두 사라지자, 결국 혼자 남게 된 내가 나의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압력을 받다가 더이상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에게만 기대고 있는 덕분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소음 속에 살아가고 있기에 “나” 본연의 모습을 바라보기 어렵다. SNS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올바른 가치관과 인식’이 시시각각으로 쏟아져 나오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체로 이 흐름에 떠밀려 간다.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의와 생각을 온전한 “나”에 비롯 됐다고 착각한다. 우리에겐 “남”이 아닌, “나”에 위한 철학이 필요하다.

11.13 목 ( p.142 ~ p.162 )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변화한다. 우리 자신도 변해서 아무도 자기가 오늘 사랑하는 것을 내일도 사랑하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삶의 행복을 위한 우리의 모든 계획은 공상이다. 정신이 만족하는 순간이 올 때 그 만족감을 만끽하자.
나에게 찾아온 행복과 즐거움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를 생각하지 말고,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느끼자! 행복과 즐거움의 크기는 진심으로 느끼는 순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하지만, 느끼기 전부터 크기를 섵불리 규정하면 본연의 모습을 느낄 수 없다. 나에게 찾아온 행복과 즐거움을 재단하는 행위는 나 자신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11.17 월 ( p.162 ~ p.192 )

모든 것에서 떨어져나온 나, 나 자신은 무엇인가
모든 것에서 떨어져야지 비로소 본연의 나를 직면할 수 있다. 책 제목에 쓰인 “몽상”은 세계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초연의 상태로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과도 같다.